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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남극횡단 630일의 기적 어니스트 섀클턴

by goodmind.kr 2023. 2. 18.

남극 부빙에 좌초된 인듀어런스 호

 

1900년대까지 남극은 미지의 대륙이었다.

어니스트 섀클턴은 혹한의 얼음땅을 정복하기 위해 나선 영국의 탐험가로서 그의 도전과 리더십은 기적 같은 일을 이루어냈다.

그는 28세에 해군장교 로버트 스콧(1868~1912)과 함께 이미 남극을 경험했었다.

첫 번째 실패를 거울삼아 철저하게 준비한 그는 남극점 156km 지점까지 도달하였다.

하지만 남극점을 코앞에 둔 그는 식량부족으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귀환해야만 했다. 

이후 스콧이 남극점에 도달했으나 노르웨이의 탐험가 아문센이 먼저 다녀간 뒤였다.

섀클턴은 남극점 정복이라는 목표를 수정해 남극대륙 횡단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탐험대원들을 모집했다.

 

매우 위험한 여정, 보수는 적다. 
몇 달간 지속되는 혹한과 칠흑 같은 어둠을 견뎌야 한다.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안전한 귀환을 보장할 수 없다.
하지만 성공할 경우 명예와 영광을 얻을 수 있다.

 

섀클턴은 수천 명의 지원자들 중에 27명을 선발해 세 번째 남극 탐험에 나섰다.

안타깝게도 섀클턴의 배가 부빙에 갇혀 10개월을 표류하게 되었다. 

거대한 얼음 사이에 낀 배가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부서졌고 결국 좌초되고 말았다. 

배를 버리기로 결정한 탐험대는 가까운 전초기지까지 1900km를 이동해야 했다.

비록 섀클턴의 세 번째 도전도 실패하게 되었지만 역경 속에서 그의 리더십이 빛을 발한다. 

 

목표가 바뀌었다. 
전원을 살려서 돌아간다. 

 

섀클턴은 밀항자 1명을 포함한 28명의 대원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목표를 수정하고 새로운 전략을 수립한다. 

어떻게 영하 30도의 추위 속에서 2년 동안 모든 대원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구명용 보트 세 척을 끌고 부빙 위를 이동해야 했으므로 불필요한 짐은 모두 버렸다.

섀클턴이 먼저 금으로 된 담뱃갑을 버렸고 대원들도 그를 따랐다. 

섀클턴이 끝까지 챙긴 물건은 밴조와 사진기, 축음기 등이 있는데 밴조의 선율은 지친 대원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고 그들이 남긴 사진은 희망의 증거로 역사에 남게 된다. 

대원들은 여름이 오자 녹아내리는 부빙 사이를 뚫고 엘리펀트 섬에 간신히 상륙한다.

 

포경기지에 가서 구조를 요청하고 오겠다. 

 

섀클턴은 6명의 결사대를 뽑아 남극해를 건너기 위해 작은 구명보트에 오른다. 

허리케인 수준의 강풍이 불었지만 극적으로 1300km를 나아간 보트는 16일 만에 사우스 조지아섬에 도착한다. 

구조를 기다리던 남겨진 대원들은 아무도 이탈하지 않았고 물개와 펭귄을 잡아먹으며 넉 달을 기다렸고 섀클턴은 약속대로 대원 전원을 구조해 내었다.

 

섀클턴은 언제나 자신보다 대원들의 안전을 우선시했으며 대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불화를 일으킬만한 대원은 자기 텐트에서 재웠고 모든 대원에게 역할을 주어 소외되지 않게 했다.

섀클턴의 리더십은 함께 역경의 시간을 견디게 해 주었다.

그는 대원들과 함께 놀았고 항상 즐거운 일을 만들어 냈다.

 

반면 캐나다 빌흐잘무르 스테팬슨이 이끄는 북극점 탐험대는 앞서 1913년 8월 캐나다 최북단을 출발했지만 단단한 빙벽에 갇혀 생존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구조대를 자청한 리더가 먼저 팀을 이탈하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 북쪽 칼럭 호의 대원들은 고립되었으며 팀에는 분란이 일어났다.

불과 수개월만에 서로를 불신하며 이기적인 사람들로 변하고 말았다. 

그 결과는 안타깝게도 11명의 대원들이 모두 북극의 황무지에서 죽음을 맞는 비극이었다. 

 

좌측 두번째 어니스트 섀클턴

 

인내의 리더십

섀클턴은 항해에 앞서 배의 이름을 인듀어런스 호라고 명명했었다.

생명이 위협받는 극한의 상황에서 그들은 630일을 인내하며 포기하지 않았고 갈등을 극복하고 확신을 가지고 리더십을 발휘했다. 

결국 28명의 대원 전원을 무사 귀환시킨 섀클턴의 리더십은 기적을 만들어냈고 그들의 이야기는 후대에게 큰 감명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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