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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영화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by goodmind.kr 2022. 11. 17.

Steven Spielberg
스필버그와 봉준호 감독

 

스필버그는 1946년 12월 18일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전기기술자인 아버지와 클래식 피아니스트인 어머니로부터 엔지니어와 예술가의 기질을 모두 물려받은 그는 훗날 위대한 영화감독으로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학교에선 유대인이란 이유로 온갖 놀림을 받아 외톨이였고 부모의 이혼으로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
11살 때 우연히 8mm 가정용 무비 카메라를 가지게 되면서 그의 일생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카메라의 매력에 빠져든 스필버그는 스스로 시나리오를 쓰고 40분짜리 단편영화를 찍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영화감독의 꿈을 키워갔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영화과를 졸업하고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입사한 후 본격적인 감독의 꿈을 펼치게 되었다.
「슈가랜드 익스프레스」를 시작으로 블록버스터 시장을 개척한 「죠스」에 이어 「E.T」, 「인디애나 존스」, 「후크」, 「쥬라기 공원」 등 영화를 찍을 때마다 흥행에 성공하며 세계적인 영화감독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스필버그의 영화적인 상상력과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정작 아카데미는 그에게 상을 주지 않았다.
그가 단지 상업적 영화만 잘 만들 뿐 작품성과 예술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그의 영화는 기계적인 특수효과를 빼면 남는 게 없다.

 

스필버그는 평론가들의 혹평에 적잖이 실망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오히려 동기부여로 삼았다.
그는 「쉰들러 리스트」를 구상하면서 이전과 다르게 접근했다.
그동안 자신이 즐겨 사용했던 특수효과와 영화적인 상상력을 배제하고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데 주력했다.
자신의 정체성이 깃든 유대인의 아픈 역사를 영상에 고스란히 담아낸 것이다.
영화가 개봉하자 사람들은 새로운 감동을 받았고 아카데미에서도 그를 진짜 예술가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쉰들러 리스트」로 작품상과 더불어 7개 부문에서 상을 휩쓸었고 뒤이어 제작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감독상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잘 만든 영화 한 편은 자동차 몇만 대 값에 달하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스필버그는 지금까지 100여편의 영화를 찍었다.
그는 카메라로 세상을 들여다 보며 그곳에서 항상 희망을 찾았고 사람들의 꿈과 행복을 기록했다.
만일 스필버그가 당면한 어려움들을 피하고 좌절했다면 오늘날 영화사에 길이남을 거장으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긍정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현실을 바르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삶의 태도가 어려움을 극복할 지혜를 갖게 해 주기 때문이다. 

 

나는 늙어도 내가 하는 일은 결코 늙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항상 배고픈 이유라고 생각한다.

- 스티븐 스필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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